아버지

利行(이행) 증병조판서

동생-淵(연)◇, 潾(인)

(징)◇○<박사공 10세/1-179><통계공파> 안산 참판공(參判公)

  1466∼1536년 6월 6일 별세, 자는 언심(彦深), 호는 소재(少齋), 심재(心齋), 서울에 살았다. 1468년 약관의 나이에 김일손 방 사마시 진사 2등으로 입격, 1494년(성종 25) 한훈(韓訓) 방 갑인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權知)를 첫 벼슬로 1495년(연산 1) 예문관 검열, 대교, 1497년(연산 3) 1월 홍문관 저작(弘文館 著作), 3월 박사(博士), 사경(司經), 9월 홍문관 부수찬(副修撰), 검토관, 이듬해 2월 수찬, 1500년 부교리(副校理), 교리, 시독관, 시강관, 1503년 5월 부응교(副應敎), 10월 장령, 11월 홍문관 직제학을 지내고 경연관(經筵官)으로 8년간 재직, 전한(典翰), 1504년(연산군 10) 1월 부제학(副提학) 등을 거쳐 4월 가선대부 우부승지(右副承旨)로 재직중 왕에게 수렵(狩獵)을 삼갈 것을 간(諫)했다가 낙안(樂安 지금의 승주)에 귀양가고, 1506년 복세암(輻世庵) 이건(移建)을 반대하여 투옥되었다. 이 해에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석방, 원종공신에 올라 강원도 관찰사가 되었으며. 1507년(중종 2) 11월 형조참판(刑曹참判)이 되고 이듬해 7월 7일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12월 30일 귀국했다. 특진관, 뒤에 전주부윤, 1512년(중종 7) 8월 예조참판(禮曹參判) 등을 역임했고 1519년 11월 충청도 병마절도사, 이듬해 5월 황해도관찰사, 1521년(중종 16) 1월 동지중추부사, 승문원 제조(提調) 6월 5일 재차 하정사(賀正使)로 중국에 다녀오고 1524년 1월 개성부 유수(留守), 동지중추부사, 1527년 2월 수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5월 공조참판, 독권관, 그후 1529년(중종 24) 경주부윤, 1535년 예조참판(禮曹참判)을 역임했다. <왕조실록 12집 656면∼17집 605면>

  신도비명은 양관 대제학 호음 정사룡(鄭士龍)이 짓고 판서 조상우(趙相愚)가 글씨를 쓰고 이조참의 윤덕준(尹德駿)이 전서를 썼다. 신도비 명문에 시조님 사적이 실려 있다. 이 신도비는 1536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문헌상 가장 오래된 시조님 사적이다. [작품] 익혜공 鄭蘭宗(정난종) 신도비문 글씨, 예조참의 崔漢禎(최한정) 비문

 

배위

정부인 연일 鄭氏(정씨) 1465년∼1524년(중종 19) 3월 7일 별세, 아버지는 판사 미(湄), 조부는 군수 이조판서 자숙(自叔), 증조부는 병조판서 증 좌의정 정숙공 연(淵), 외조부는 이조정랑 연안 이인충(李仁忠)

 

경기도 안산시 양상동 산 31번지 오좌(午坐)에 쌍분이며 석물이 있다.

 1982년 재각 경안재(景安齋)를 세우고 1991년 묘 및 신도비가 안산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되었다.  

 

아들

僖(희) 감찰, 儀(의) 판관, 億(억)○정언, 儼(엄) 교감, 偉(위)○목사,      

俊(준) 참봉, 任(임) 진사